작품 소개

죽음에의 찬가(Ode to Death; H. 144, Op. 38)는 영국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1874–1934)가 1919년에 작곡한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 작품입니다. 이 곡은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이 1865년에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애가 “보랏빛 라일락이 문간에 필 때” (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d) 의 한 구절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구스타브 홀스트는 전쟁에서 사망한 친구들을 애도하기 위해 휘트먼의 애가의 마지막 부분에 착안하여 “죽음에의 찬가”를 작곡했습니다. 홀스트는 휘트먼을 “관용과 국제주의를 제시하는 신세계의 예언자이자, 초월주의가 빅토리아 시대의 고착된 가치관에 대한 해독제를 제공하는 새로운 유형의 신비주의자”로 보았습니다. 설리번은 또한 “홀스트는 휘트먼의 ‘아름답고 위로가 되는 죽음’이라는 비전에 무한한 공간감을 암시하는 빛나는 열린 화음을 부여한다… 홀스트는 여기서 불확실성, 무한함의 느낌에 관심이 있으며, 예측 가능성과 종결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죽음에의 찬가”에서 조용하고 체념한 분위기는 매튜스에 의해 찬송가의 생명력 넘치는 영성 이후 “갑작스러운 급변”으로 여겨집니다. 홀스트의 딸인 이모겐 홀스트는 이 곡이 홀스트의 죽음에 대한 사적인 태도를 표현한다고 믿었습니다. 동료 작곡가 레이프 본 윌리엄스와 어니스트 워커에 따르면, 이 곡은 홀스트의 가장 아름다운 합창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가사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이 1865년에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애가 “보랏빛 라일락이 문간에 필 때” (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d) 의 한 구절

Come lovely and soothing death,
Undulate round the world, serenely arriving, arriving,
In the day, in the night, to all, to each,
Sooner or later delicate death.

오라, 사랑스럽고 위로를 주는 죽음이여,
세상을 감싸며 너울거려라, 고요하게 다가와라, 다가와라,
낮이든 밤이든 모두에게, 각자에게,
이르게든 늦게든, 섬세한 죽음이여.

 

Prais’d be the fathomless universe,
For life and joy, and for objects and knowledge curious,
And for love, sweet love—but praise! praise! praise!
For the sure-enwinding arms of cool-enfolding death.

찬양하라, 헤아릴 수 없는 우주를,
삶과 기쁨, 그리고 신비롭고 새로운 지식과 사물을,
사랑을, 달콤한 사랑을—그러나 찬양하라! 찬양하라! 찬양하라!
확실하게 우리를 감싸는, 서늘하게 품어주는 죽음의 팔을.

 

Dark mother always gliding near with soft feet,
Have none chanted for thee a chant of fullest welcome?
Then I chant it for thee, I glorify thee above all,
I bring thee a song that when thou must indeed come, come unfalteringly.

항상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어두운 어머니여,
그대를 위해 완전한 환영의 노래를 부른 이 없었는가?
그러면 내가 그대를 위해 노래하리, 그대를 가장 위대하게 찬양하리,
그대가 반드시 와야 할 때 주저함 없이 오라, 나는 그대에게 이 노래를 바치리.

 

Approach strong deliveress,
When it is so, when thou hast taken them I joyously sing the dead,
Lost in the loving floating ocean of thee,
Laved in the flood of thy bliss O death.

다가오라, 강력한 구원자여,
그 때가 되면, 그대가 그들을 데려갔을 때, 나는 기쁨으로 죽은 이들을 노래하리,
그대의 사랑 가득한 부유하는 바다에 빠져,
그대의 기쁨의 물결에 씻기리, 오 죽음이여.

 

From me to thee glad serenades,
Dances for thee I propose saluting thee, adornments and feastings for thee,
And the sights of the open landscape and the high-spread sky are fitting,
And life and the fields, and the huge and thoughtful night.

내게서 그대에게 기쁨의 세레나데를,
그대를 위한 춤을 제안하리, 그대를 경배하며, 그대를 위한 장식과 축제를 펼치리,
열린 풍경과 넓게 펼쳐진 하늘의 경치가 적합하리,
삶과 들판, 그리고 광대하고 사색적인 밤도 그러하리.

 

The night in silence under many a star,
The ocean shore and the husky whispering wave whose voice I know,
And the soul turning to thee O vast and well-veil’d death,
And the body gratefully nestling close to thee.

많은 별 아래 고요한 밤,
바닷가와 나는 잘 아는 속삭이는 파도의 거친 소리,
그리고 영혼은 그대에게 향하리, 오 광대하고 은밀하게 가려진 죽음이여,
몸은 그대에게 감사히 기대리.

 

Over the tree-tops I float thee a song,
Over the rising and sinking waves, over the myriad fields and the prairies wide,
Over the dense-pack’d cities all and the teeming wharves and ways,
I float this carol with joy, with joy to thee O death.

나무 꼭대기 너머로 그대를 위해 노래를 띄우리,
솟아오르고 가라앉는 파도 위로, 수많은 들판과 광활한 초원 너머로,
빽빽하게 모인 도시와 북적이는 부두와 길들 위로,
나는 이 찬가를 기쁨으로, 기쁨으로 그대에게 띄우리, 오 죽음이여.

“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d” (보랏빛 라일락이 문간에 필 때)는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암살을 추모하기 위해 1865년 여름에 쓴 목가적 애가다. 이 시는 206행의 자유시로, 목가적 애가에서 흔히 사용되는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자연과 농촌 이미지를 통해 슬픔에서 죽음의 수용과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을 표현한다. 대표적인 상징으로는 라일락, 서쪽 하늘의 별(금성), 은둔의 새 등이 등장하며, 링컨의 이름이나 그의 죽음의 구체적인 상황을 언급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미국 남북전쟁을 암시하는 이미지를 통해 전쟁의 비극을 묘사한다.

이 시는 휘트먼의 대표작 *Leaves of Grass*가 출판된 지 10년 후에 쓰였으며, 휘트먼의 시적 비전이 성숙해진 것을 보여준다. 특히 남북전쟁에서 겪은 감정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으며, 휘트먼의 초기 시에서 드러난 정체성의 드라마와 낭만적 활력이 더 깊이 있는 역사적 성찰과 미국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인식으로 전환되었음을 나타낸다. 링컨의 죽음 직후 재빠르게 완성된 *Drum-Taps*와 *Sequel to Drum-Taps*에 수록된 이 시는 1865년 가을 처음 출판되었으며, 1867년 네 번째 판부터 *Leaves of Grass*에 통합되었다.

휘트먼은 이 시를 자신의 최고작으로 여기지 않았으나, 영문학의 고전 애가인 존 밀턴의 *Lycidas*와 퍼시 비시 셸리의 *Adonais*와 비교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다.

 

유튜브 댓글들

구스타브 홀스트는 비디오 게임이 나오기 전, 이미 비디오 게임 사운드트랙을 작곡한 사람이다.

나는 이 곡이 플루토의 자리를 채운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그는 죽음과 저승의 신이니까.

사라진 행성 – 플루토

1919 – 이 곡에서 세계의 몸과 마음, 영혼에 남은 대전쟁의 영향을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홀스트는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 블랙 사바스의 곡 “Black Sabbath”는 그의 ‘화성, 파괴자’ 곡의 느슨한 해석이며, 다이아몬드 헤드의 “Am I Evil”도 마찬가지다. 존 윌리엄스는 그의 ‘행성 모음곡’에서 스타워즈의 음악을 위한 많은 영감을 받았으며, 특히 악기 편성과 스타카토 구문 사용에 있어 그렇다. 심지어 마리오 3의 비행선 테마도 ‘화성, 파괴자’와 닮았다. 대중문화는 홀스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거인들에 대한 존경을 받지 못한다.

휘트먼의 텍스트다. ‘Melancholetta’라는 웹사이트에서 이 시와 몇몇 해설을 볼 수 있다. 온라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곡이 죽음 직전의 평화로움을 멋지게 구현한 것 같다고 느낀다.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오는 평화, 모든 고통이 사라질 수 있는 평화다. 투쟁, 고통, 눈물. 이 모든 것이 끝났다. 세상의 고통은 사라졌고, 이제 희망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정말 숭고하다. 감사합니다, 홀스트. 세상이 당신을 단순히 ‘행성’의 작곡가로만 알지 않기를.

 


 🤖 이 포스트는 ChatGPT-4o 등의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문의 | 코멘트 또는 yoonbumtae@gmail.com


카테고리: Classical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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