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대학병원 2박 3일 입원 후기

3년 전에 2박 3일간 시술을 위해 대학병원 암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암병동인데 암환자만 가는 곳은 아니고 사실상 소화기내과 병동이라 암 이외의 다른 질환의 환자도 입원할 수 있는 병동이었습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그런 일반적인 암 종류는 아니었고 약자로 NET라고 해서 비슷한 유형의 특이한 종양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 입원이 필요했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도 중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기록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게으르고 기록을 별로 하지 않는 성격이라 미루고 미룬지 벌써 3년이 되어가고 있고, 제 기억속에서도 희미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어 이제라도 기록해보고자 합니다.

딱히 유쾌한 순간은 아니었고 개인사는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니라 갤러리에 남아있는 사진이 딱히 없네요.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어차피 2박 3일동안 커튼치고 침상에 누워서 핸폰만 하던게 전부였어서…

입원 절차 중 신체검사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제 병상 생활과는 상관없는 사족도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전 스토리 및 입원 절차

먼저 동네의 규모있는 병원에서 모종의 이유로 대장내시경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은 수면 진정제를 받고 있었는데 제가 중간에 갑자기 깼습니다. 왜 깼는지 그 전 상황은 모르지만 아마 내시경 중에 일반 용종과는 다른 무언가가 발견되서 의료진들이 웅성대던 모양이었고 제가 그걸 듣고 깨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TMI로 수면내시경 중간에 깨서 의식은 있는데 진정제는 아직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제 의지와 상관없이 헛소리가 나오는데(흔히 말하는 수면내시경 중 그 헛소리) 그게 다 제 기억속에 남아있어 좀 쪽팔린 경험으로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내시경 후 이 종양은 여기서 치료할 수 있는게 아니고 상급병원 가서 검사해봐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알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딱히 큰 생각은 들지 않았고 그저 “읭? 뭔데? 뭐지?” 이런 생각밖에 안들었습니다. 평소에 복통 같은 것이 전혀 없었고, 그 외에도 딱히 아무런 징후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병, 특히 더 희귀한 종류라고는 생각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모 대학병원으로 가서 CT 등을 찍었습니다. 검사 결과 다행히 대장 외에 다른 기관으로 전이는 되지 않은 것 같고, 입원에서 제거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입원 날짜를 예약하게 되었습니다. 사족으로, 병원 번호표를 뽑으려고 대기타고 있을 때 최종 면접까지 갔던 회사가 떨어졌다는 연락이 와서 기분이 되게 나빴던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당시 면접관의 태도도 상당히 불쾌했기 때문에 너무 화가 나고 욕이 나올 정도로 짜증났었습니다.

당시 *로나가 기승이었던 시기였기 떄문에 입원일 전날인가 처음으로 PCR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면봉으로 코를 훅 찌르는데 솔직히 NET보다 코 찌르는게 훨씬 더 아팠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결과는 음성이었고 다음 날 오후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입원할 때 동행한 보호자가 없어도 보증인 개념으로 가족 또는 보호자 역할을 할 누군가 한 명의 이름과 연락처, 주민등록 번호 등을 기입해서 내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적지 못하면 아예 입원 거부가 된다고 합니다. 다행히 무사히 적어낼 수 있었지만, 먼 미래에 만약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했어서 좀 심란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평소에 결혼 등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그때는 마음이 흔들리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해프닝으로 처음에 데스크에 어디로 가야되냐고 물어보고 나서 간호사가 안내를 해주는데 환자는 어디갔냐고 해서(보호자 없이 단독으로 입원했습니다), 제가 환자라고 하니까 보호자인줄 알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보통 여기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만 오지 나이 적은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봤던 대부분 환자는 최소 아저씨 나이대고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전 교육을 받고 간단한 신체 검사 및 소변 검사 등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벌써 기억이 희미한데 아마 왼쪽 손등에 링거를 꽂았습니다. 일단 수면 진정제를 이 바늘 주사로 투여하고, 내시경 과정에서 탈수가 일어나기 쉽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예방 차원에서 그런것 같았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매우 불편했고 입원 내내 꽂아놨기 때문에 씻거나 화장실 가는 것도 난처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대장내시경 시술이 있었는데 간호사가 저녁을 준비 못했다면서 죄송하다고 오늘만 나가서 편의점에 사먹으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대장내시경이라서 어차피 아무것도 못먹어서 상관없지만 만약 다른 질환이어서 밥을 먹어도 되는 상황이었으면 좀 서러울 것 같았습니다.

 

5인실, 방음 전혀 안됨

사실 입원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2인실 이상은 의료보험이 적용이 안되서 굉장히 비쌌기 때문에 선택 자체가 불가능했고, 따라서 의료보험 적용을 위해 5인실에 입원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방음이 전혀 안되었던 게 아직까지 뭔가 아련한(?) 감정이 남아있는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뭘 하는지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사정을 들을 생각도 전혀 없었지만 침상에 커튼 가림막이 전부였기 때문에 듣기 싫어도 무조건 들리는 정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어차피 그 분들의 이름도 얼굴도 다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냥 적어두도록 해보겠습니다.

  1. 제 바로 옆에 계신 분은 추측으로 40대~50대 중년 남성이며, 정황상 췌장암이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황달 증세가 심해 입원하였는데 요관? 어딘가에 철 부품 같은걸로 확장해서 임시로 응급조치 하였고, 아마 췌장암으로 의심되어서 조직검사를 하긴 할거지만 희망적인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고 조직검사를 하면 아마 생각하는 그 병이 맞을 확률이 높다고 의사가 그러더군요.
    그래서 그 분의 부인이 매우 당황해서 시부를 비롯해 여기저기 상황을 알리고, 의사한테 더 좋은 (아마 빅4 그런급) 병원을 가길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의사가 설명 내지 설득하는데 그 중 당시 제 담당 의사도 있었습니다. 굉장히 까칠한 사람이었는데, 그 까칠한 말투로 다른 병원으로 가지 않고 여기서 치료받아도 되는 이유를 굉장히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더군요. 옆에서 듣는 저조차 같이 설득당해서 역시 똑똑한 사람은 무언가 달라도 다르구나 느낀 경험이 있습니다. (여러 번 재차 언급하겠지만 제가 듣고싶어서 들은게 아닙니다.)
    그 분도 다른 지인에게 전화하던 내용을 들으니 평소 회사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일상적으로 생활하다가 하루아침에 날벼락으로 병원신세가 된 것 같은데, 그것도 보통 암도 아니고 끝판왕 암이라 많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2. 무슨 병인지 모르는 50~60대 남성인데, 이 분은 하지 말라는 짓을 많이 저지르셨습니다. 또 간호사들한테 관심도 많은지 항상 간호사들에게 무언가 말을 걸던 기억도 있네요. 그 중 백미는 병동에는 칼을 반입하는 것이 금지인데 과일을 깎아먹어야겠다면서 어디서 칼을 들고 와서(아마 보호자가 가져다 준 듯 합니다) 깎다가 베여가지고 입원실 바닥을 피바다로 만들어서 간호사들에게 엄청 쿠사리를 먹었던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3. 제일 심각했던 사람은 급성 알콜 중독으로 응급실에서 입원 병동으로 넘어온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몰랐지만 온갖 암환자들을 뛰어넘어 가장 정도가 심했습니다. 다른 환자들은 그래도 몸이야 아프지만 의식은 있어서 정상적으로 지내는데 그 분은 제가 퇴원할 때까지 혼절 상태로 제정신이 었던 적이 전혀 없었고 입원 첫날 부인이 한밤중에 자리를 비웠는데 간병인이 따로 없어서 침상에서 떨어져 당직 간호사, 의사들 다 달려와서 비상상황을 만든 적도 있었습니다.
    깨어있는 동안은 그냥 술만 들이켜부었기 때문에 간이 심하게 망가져 있어서 초장시간 치료가 필요하다고, 이미 병원 외래 경력도 오래되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냐고 의사가 걱정해하던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첫날은 자리를 비웠지만 낙상 후 부인이 계속 와서 걱정하는데 저렇게 술중독으로 거의 초죽음 직전까지 간 사람조차 저렇게 걱정하고 위해주는 배우자가 있다는 게 황당하면서도 부럽기(?)도 했습니다.
  4. 나머지 한 분은 일찍 퇴원하셔서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3번 환자의 낙상을 발견하고 신고해주신 고마운 분이기도 합니다.

 

5인실의 단점은 열악한 시설과 사람도 사람이지만 위와 같이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던 각종 정보들을 너무나 생생하게 듣게 되고,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 저를 심란하게 만드는 것도 한 몫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입원을 다시 하게 된다면 소수 인실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미래에도 1인실을 큰맘먹고 지를 수 있는 그런 수준은 절대 되지 않을 것 같아 서럽습니다.

 

입원 생활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위의 염탐(?) 섹션이 전부이고, 제 입원 생활 자체는 정말 별 내용이 없었습니다. 대장내시경 전후로 식사를 전혀 못하게 되어 약 30시간을 굶어야 했지만 사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첫 날은 대장내시경을 위해 대장내시경 약을 먹고 화장실을 여러 차례 다녀와야 했습니다. 화장실은 병실 내에 1개, 외부에 공용화장실 1개가 있었는데 사람이 많아서 쓰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화장실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 그 부분에서는 눈치보지 않고 널널하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변기 높이가 일반 화장실에 비해 많이 낮았어서 그 부분은 좀 불편했습니다. 샤워기가 옆에 있어 변기를 청소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만한 부분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평소 지병으로 인해 먹는 약들이 있었는데, 그 약들을 복용 가능한지 간호사한테 제출했는데 퇴원할때까지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아마 먹으면 안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컨디션이 좀 무너져서 힘들었었습니다. 또 긴장을 많이 했는지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습니다. 새벽 내내 깨어있었고 스마트폰 등으로 유튜브, 인터넷, 게임 등만 반복한 채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외출을 잠깐 하기도 했었는데 초겨울이라 추운 이유 등으로 그마저도 귀찮아서 이후 계속 침상에만 있었습니다.

둘째날 오전에는 시술이 있었기 때문에 수면 진정제를 맞고서 못잤던 잠을 푹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중간에 잠깐 깨긴 했는데 곧바로 다시 잠들었고 한참 뒤에 깨어났습니다. 도중에 헛소리 같은 것을 했을수도 있지만 제가 당시 상황을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므로 제 알바는 아닙니다.

그리고 담당 의사로부터 해당 종양은 잘 제거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내일 퇴원하면 된다고 얘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저녁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단칼에 안된다고 내일 아침까지 못먹는다고 해서 좀 풀이 죽었었습니다. 그날 저녁도 마찬가지로 잠을 못이루고 누워서 스마트폰 같은 것만 주구장창 하였고, 상황때문에 알고리즘에 병원 관련 내용이 뜨길래 그런 영상들도 좀 봤습니다.

마지막날 아침에 병원식을 처음으로 접해봤습니다. 두유, 계란찜, 불고기 등이 기억이 나는데 병원밥은 저염식이라 맛없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지만  저는 오랫동안 굶은 뒤 먹은거라 그런지 싱겁거나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고 엄청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ㅋ?) 입원인데 병원밥 한끼도 못먹으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마지막날 아침에 맛있게 먹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오전에 한번 더 의사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퇴원 수속 절차를 밟아 퇴원했습니다. 제가 경증이고 나이도 적어서 그런지 보호자 없이 혼자 왔는데도 입원 기간동안 놀랍도록 의료진 그 누구도 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둘째날부터 커튼치고 그냥 침상에 누워있기만 했는데 거의 의료진들은 얼굴도 못본 것 같고, 저도 누군가가 필요할 정도의 응급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음 뭔가 말하고 싶지만 미묘하네요. 아무튼 조용히 아무 일도 없이 퇴원하고, 수속처에서 후속 정산과 희귀병 산정특례와 관련된 신청을 하고 무사히 귀가했습니다.

 

결론

그 당시에도 여러 생각이 많이 드는 경험이긴 했지만,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해서 아무 탈 없이 잘 살았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은 흘러 한 달 뒤면 입원한 지 3년이 되고, 저는 그때 겪었던 여러 생각들과 다짐은 내다버린 채 오늘도 여전히 많은 시간을 이불 속에서 낭비하면서 열심히 헛되게 살고 있습니다.

추적 검사는 앞으로 2년 정도 더 남았지만, 지금까지 재검 결과들을 보면 이제 완전히 제거된 것 같고 다시 생길 확률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 외에도 앞으로 살면서 어떤 병이나 위험이 다시 생길지는 모를 일이고, 건강이 인생에 있어서 제일의 척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맞다는 것을 오늘도 느끼면서 살고 있는것은 작은 수확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귀중한 경험을 헛되게 날리지 말고, 삶의 남은 시간에서 어떻게 의미있게 활용할 수 있을 지 더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아마 하루가 지나면 또 잊어버릴 것 같지만요.

문의 | 코멘트 또는 yoonbumtae@gmail.com


카테고리: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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